포항 법광사지에서 만난 천년 고요와 석탑의 단아한 품격

햇살이 짙게 내려앉은 오후, 포항 북구 신광면의 법광사지를 찾았습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부드럽고, 멀리서 산 능선이 희미하게 겹쳐져 있었습니다. 마을 끝의 완만한 구릉을 따라 오르자, 넓은 터 위로 오래된 석탑이 단정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돌의 표면에는 세월의 결이 선명했고, 이끼가 군데군데 자리해 있었습니다. 사찰의 흔적은 남지 않았지만, 터에서 풍기는 고요한 기운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의 소리가 전혀 없는 공간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탑의 그림자를 흔들었습니다. 그 순간, 천년의 시간이 아주 조용히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1.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

 

법광사지는 신광면의 작은 마을 안쪽, 논과 밭이 이어지는 평지 끝자락에 있습니다. 포항 시내에서 차로 약 25분 거리로, 내비게이션에 ‘법광사지’를 입력하면 안내 표지판까지 쉽게 도착합니다. 주차장은 마을 입구의 공터를 이용하면 되고, 이후 약 300m 정도 흙길을 걸어야 합니다. 길 양옆에는 들풀과 억새가 자라 있고, 가을이면 황금빛 벼 이삭이 고개를 숙입니다. 걸음을 옮길수록 주변의 소리가 줄어들고, 들판 너머로 석탑의 윤곽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길은 완만하며, 비 온 뒤에도 비교적 단단하게 다져져 있습니다. 평범한 시골길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평온함이 감돌았습니다.

 

 

2. 법광사지의 현재 모습과 첫인상

 

법광사지는 지금은 사찰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석탑과 기단석, 불상 파편 등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심에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를 보여줍니다. 탑의 1층 기단은 단단하게 다듬어져 있고, 옥개석의 모서리마다 미세한 곡선이 살아 있습니다. 햇빛이 비스듬히 비추면 돌의 표면이 부드럽게 반사되어 색이 깊어집니다. 주변에는 잡초가 거의 없었고, 석탑 주변의 흙길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마을의 소음이 닿지 않아 고요했으며, 탑 앞에 서면 절터가 품고 있는 깊은 침묵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단아하면서도 경건한 공간이었습니다.

 

 

3. 법광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법광사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 무렵 창건된 사찰로, 당시 포항 일대 불교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문헌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석탑의 양식과 출토 유물로 보아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탑 주변에서는 금동불편, 기와 조각, 토제 인장 등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법광(法光)’이라는 이름은 ‘부처의 가르침이 세상을 비춘다’는 뜻으로, 사찰이 지닌 상징성이 뚜렷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인 단정한 비례와 세련된 조각기법을 보여주며, 경북 동해안 지역 불교 조형미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돌 구조물이 아니라, 오랜 신앙의 흔적이었습니다.

 

 

4. 세심하게 보존된 유적의 고요함

 

법광사지 일대는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탑 주위의 잔디는 일정한 높이로 잘려 있었고, 주변에는 안내판이 간결하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돌기단 옆에는 낮은 보호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으며, 그 너머로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석탑의 각 면에는 햇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미묘한 색의 차이가 드러났고, 그림자는 하루 종일 다른 길이를 그렸습니다. 바람이 탑의 모서리를 스치면 낮은 음이 울리는 듯했습니다. 공간 전체가 한 폭의 정적인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관리인의 손길이 자주 닿는 듯, 주변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도 본래의 품격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5. 인근 명소와 함께 즐기는 여정

 

법광사지를 관람한 뒤에는 포항 북구의 다른 문화유산들을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차로 15분 거리에는 신광면의 법광사 삼층석탑과 흥해읍의 보경사, 내연산 12폭포가 있어 자연과 유적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근에는 송라면 청하향교와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같은 문화 탐방 코스가 이어집니다. 점심시간에는 신광면의 ‘법광다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기며 여유를 누리기 좋았습니다. 봄에는 들판에 유채꽃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억새가 바람결에 흔들려 사찰터가 한층 부드러워집니다. 하루 일정으로 역사와 풍경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할 점

 

법광사지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 방문이 적당하며, 여름철에는 그늘이 적으므로 모자와 물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석탑 보호를 위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거나 손을 대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흙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드론 사용은 제한됩니다. 오전 10시 무렵, 햇살이 탑의 서쪽 면을 비출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조용히 서서 바람과 빛의 흐름을 느껴보면, 오래된 사찰터의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마무리

 

법광사지는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터가 지닌 기운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돌과 바람, 그리고 시간만이 남아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 속에는 신앙과 역사가 고요히 스며 있었습니다. 석탑은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경건하게 다가왔습니다. 화려한 절터는 아니지만,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 진정한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 소음이 멀어졌습니다. 다음에는 새벽 안개가 낀 시간에 다시 찾아, 돌의 표면에 맺힌 물방울과 함께 이곳의 고요한 숨결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포항 법광사지는 시간과 자연, 그리고 신앙이 한데 어우러진 소중한 국가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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